의신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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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선-독립운동인명사전 -독립기념관 자료
작성자 김부열 등록일 2025.05.18

1904년 8월 10일 경상남도 마산부(馬山府) 상남리(上南里, 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상남동)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는 한자를 달리한 최봉선(崔鳳仙)을 썼다. 의신학교 재학 중 마산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의신학교에서는 박순천(朴順天)·김필애(金弼愛) 교사와 상급반 여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시위를 원만하게 전개하기 위해 이수학(李秀學)·안음전(安音全)·김남준(金南俊) 등 22명의 동기들과 함께 결사단을 조직하였다. 3월 21일 구마산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태극기와 격문을 만드는 장소로 자택을 제공하였다. 거사 당일 치마폭에 태극기를 감추어 시장으로 잠입하였다. 오후 3시 ‘대한독립’이라 쓴 큰 깃발과 태극기를 흔들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장터에 모인 3,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1927년 3월 경남 통영군(統營郡)에서는 친일파이자 경상남도 평의원인 김기정(金淇正)이 도평의회 석상에서 “조선인에게 교육은 필요하지 않으며 조선어 통역을 철폐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에 분개하여 시민대회가 열렸다. 이때 김기정의 공직 탈퇴를 주장하며 시민대회에 적극 참여하였고, 김기정의 고소로 박봉삼(朴奉杉)·황덕윤(黃德允)·황봉석(黃奉石) 등 12명과 함께 통영경찰서에 구금되었다. 구금에서 곧 풀려나 다시 시민대회 개최를 주도하였고, 김기정을 성토하는 격문을 만들어 배포하였다. 그리고 수천 명의 군중과 함께 김기정의 집으로 몰려가 시위를 이어가다가 붙잡혔다. 1심을 거쳐 1928년 12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받고 풀려났다.

광복 후 마산의신여자고등공민학교와 의신여자중학교 교장을 역임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이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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