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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제자가 외친 3.1 대한독립만세 - 박순천과 최봉선
작성자 김부열 등록일 2020.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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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순 천(朴 順 天,1898 ~ 1983 )


본관은, 밀양(密陽), 본명은, 명련(命蓮).경남 동래출생.

1917년 동래 일신학교를 졸업하고,1919년 마산 의신여학교 교사로 재직중에 3.1운동에 참가하여 지도적 활동을 하다가 수배 되어 일본으로 피신하여 일본 요시오카(吉岡)여자 의학 전문학교에 편입 하였으나,1년후 수배 인물임이 탄로나 체포 되어,마산으로 압송되어 1년을 복역하고 19228월에 출감하여,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1926년 니혼여대(日本女大)사회사업과를 졸업한후,28세에 남편 변희용(卞熙鎔)과 결혼하여 경북 고령 시댁에서 농사를 돕다가,1939년 상경하여 이우 공의 소유 벽돌집을 매수 경성가정여숙을 설립하여 교육 사업에 열중 하던 중 광복을 맞아, 1945년 중앙여중 부교장,1947년 독립촉성애국부인회장을 겸하다가,1948년 정부 수립이 되자 감찰위원에 임명 되어 활동을 하였다,


1950년 제 2 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 되어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의원으로 활동 하며 4,5,6,7 (5)까지 한국 여성 정치인 1인자 자리를 지키며 20여년간 정치인 생활을 하며,민주당 총재,민중당 최고위원,신민당 고문등을 역임하는등 시종 야당 지도자로서 일관 되게 생활 하였다. 은퇴후 중앙학원 이사, 육영수여사 추모 재단 이시장등을 역임.



최봉선(崔鳳仙)[1904~1996]


1919년 3월 21일 마산 의신 학교(義信學校) 재학 중 김남준, 이수학, 안음전 등과 함께 결사단을 조직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계획하였다. 독립 만세 운동에 필요한 태극기와 격문 등을 자신의 집에서 제작하였다. 그는 3월 21일, 의신 학교, 창신 학교(昌信學校) 학생들과 구마산(舊馬山) 장터에 모인 3,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불렀다. 1927년 3월, 통영군(統營郡) 통영면(統營面)에 거주하던 경상남도 평의회 의원 김기정이 평의회 석상에서 “조선인에 대한 교육은 필요하지 않으며 조선어로 통역하는 것을 금해야 한다.”는 매국적 발언을 하자 이에 분개하여 시민대회에 참가하고 시민 공동 절교에 동참하였다.

 

 “김기정은 일체의 공직을 파직하라”는 시민의 요구를 묵살하고 도리어 시민을 고소하였다. 이때 통영 경찰서에 구속되었으나, 석방 후 그는 동지들과 함께 다시 시민 대회를 개최하여 경찰서로 몰려가 구속자들의 석방을 요구하고 김기정의 집으로 가서 고소 취하를 요구하였으나 반성의 기미가 없음을 알고 3월 15일 격문을 만들어 수천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김기정의 집을 습격하다가 체포되고 말았다. 1928년 12월 13일 대구 복심 법원에서 소위 소요로 징역 1년 8개월의 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92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최봉선 [崔鳳仙]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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