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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독립운동 양한나 선생님 - '암살'의 주인공처럼 불꽃처럼 살다
작성자 김부열 등록일 2020.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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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및 활동사항


1893(고종 30)∼1976. 독립운동가·사회사업가.


부산 출신. 기독교 가문에서 태어나 상경하여 진명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학비조달의 어려움으로 부산으로 돌아가 1911년일신여학교(日新女學校) 제1회 졸업생이 되었다.


마산의신여학교(義信女學校)에서 7년간 교사로 근무하였으며, 이때 항일맹휴를 주도하고 일본에 건너가 요코하마신학교[橫濱神學校]에서 수학하였다. 그 뒤 중국으로 망명하여 쑤저우여자사범대학[蘇州女子師範大學]에 학적을 두면서 대한민국임시정부 경상도대의원을 지냈다.


1922년 임시정부 특사로 밀입국하던 중 잡혔으나 곧 석방되어, 이듬해 다시 상하이로 건너가 민족운동가들과 독립운동을 하였다. 어머니의 병환으로 귀국하여 1924년 이화여자전문학교 유치과를 마치고 중국에 드나들며 민족운동에 계속 관여하였다.


그러는 한편, 사회사업에 뜻을 두고 1935년 오스트레일리아에 다녀왔으며, 1936년기독교여자청년회(YWCA) 총무일을 보다가 부산 YWCA를 창설하였다. 부산시 초량동에서 3·1유치원을 설립한 것을 비롯하여 통영·진영(進永) 등지에서 유치원을 경영하였다.


이처럼 사회복지사업 일선에서 활동하던 중 광복을 맞았으며, 광복 후 초대 수도여자경찰서장에 취임하고, 부산애국부인회장으로 여성운동과 사회사업에 전념하였다.


1948년 고아원으로 자매여숙을 차렸고, 전국의 정신병원을 순례하며 정신병자수용소를 차려 병을 치료하게 하는 한편 기독교 복음을 실천적으로 전파하였다. 45세에 김우영(金雨英)과 만혼을 하였으나 7년 만에 사별하였다. 4개 국어를 구사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양한나 [梁漢拿]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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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수도여자경찰서장을 지낸 양한나 경감(1893~1976)은 3·1운동 이후 상하이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상하이와 부산을 오가며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모집해 전달했다. 1923년 임시정부 제11회 의정원 회의에 경상도 대의원으로 참석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본명은 ‘양귀념’이었으나 도산 안창호가 ‘양한나’라는 이름을 지어줘 개명했다. 수도여자경찰서장 재직 시절 여성 경찰의 리더 역할을 했던 그는 1947년 경찰직에서 물러난 뒤 부산에 ‘자매여숙’이라는 사회복지시설을 설립해 작고할 때까지 소외된 이들을 위해 헌신했다. 이 공로로 1976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받았지만, 이제까지 그의 독립운동 관련 서훈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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